문 바울 목사

문 바울 목사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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미국장로교 총회장직에 출마했던 첫 한국계 미국인 문 바울 목사가 지난 2월 20일 뉴욕 포레스트 힐스에서 소천했다. 문 목사는 호스피스 병원에서 치매 합병증으로 투병 중이었다. 향년 87세.

그는 1934년 3월 26일에 대구에서 다섯 자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. 그는 십대 시절에 한 목회자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다.  그는 노래하는 것을 사랑했다(여기를 누르면 그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). 문 목사는 평생 동안 찬양했고, 합창단을 지휘했으며, 교회에서 Come-N-Sing Messiah 콘서트를 조직했다. 그리고 은퇴 후에는 노인들을 위한 Golden Voice 합창단을 만들기도 했다.

문 목사는 1950년대에 하와이에 첫 발을 디뎠다. 그리고 Dubuque Union Theological Seminary (현재 the University of Dubuque Theological Seminary)에 입학했다. 2001년  이 학교는 문 목사의 사역을 높이 인정하며 감사패를 수여했다.

그는 노스다코타와 인디애나에서 교회를 섬겼고, 이후 뉴욕 헌팅턴 스테이션의 베다니 장로교회로 청빙을 받아 1994년까지 사역을 하였다.

1986년에 문 목사는 미국장로교 제 198회 총회의 총회장에 출마했는데, 이는 한국계 미국인으로서는 첫 번째였다. 뉴욕타임스에 따르면, 그 해의 총회는 벤자민 위어 목사를 총회장에 선출했다. 위어 목사는 레바논 선교사로 사역하다 16개월간 인질로 잡히기도 했다. 위어 목사가 첫번째 투표에서 356표를 얻어 당선되었다.  문 목사는 183표로 2위를 차지했다. 플로리다 코럴 게이블스 제일 장로교회 목사인 캐롤 슈스터 목사는 105 표를 얻었다.

문 바울 목사

1986년에 문 목사는 미국장로교 총회의 총회장에 출마했다. 첫번째 한국계 미국인이었다. 그 해, 총대들은 벤자민 위어 목사(오른쪽에 앉은 이)를 총회장으로 선출했다. (기고된 사진)

문 목사는 연금국의 지역 담당자가 되었다. 늘어나고 있는 한인장로교회들을 위한 미국장로교의 연금 플랜을 진행하기 위해 고용된 첫번째 한국계 미국인이었다. 그는 1995년부터 10년 후 은퇴할 때까지 연금국에서 봉사했다.

그는 헌신적인 아내 안나와 결혼했다. 유족으로는 아내와 두 딸, 파울라, 비아타, 손자 올리버와, 여러 조카, 질녀, 사촌, 사돈이 있다.

가족들은 그가 항상 사람들을 돕고 하나님을 섬기기를 원했다고 전했다. 그가 가장 좋아하는 성구는 빌립보서 4장 13절이다 : "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"

 2월 24일, 뉴욕 포리스트힐스 제일 장로교회 임시목사인 제프리 코터 목사가 가족장을 인도했다.  추후 온라인과 대면으로 추도식을 할 예정이다.  이 추도식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문 목사의 딸 비아타 문에게 moon.beata@gmail.com 으로 연락하면 된다.